Diary/QT

'아버지'가 아닌, 아버지의 '은혜'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나

Melphi 2015. 11. 3. 16:01


올해 5월에 Benjamin Robinson 목사님이 "The Rebellious, the Religious and the Resilient"라는 제목으로 해주셨던 설교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다.우리가 다 아는 '탕자의 비유' (눅 15:28-32)를 가지고 해주신 설교였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우리가 얼마나 '아버지'가 아닌 '아버지의 은혜'를 원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설교 영상의 26:00에서 약 2분간 귀환을 결심한 탕자의 입장을, 39:50 부근에서 약 2분간 귀환한 동생을 본 형의 입장을 볼 수 있다. 참고로 영어이다.)










누가복음 8:40-56을 묵상하면서 비슷한 메시지를 느낄 수 있었다. 먼저 본문을 읽어보자. 

Jesus Raises a Dead Girl and Heals a Sick Woman
40Now when Jesus returned, a crowd welcomed him, for they were all expecting him. 41Then a man named Jairus, a synagogue leader, came and fell at Jesus’ feet, pleading with him to come to his house 42because his only daughter, a girl of about twelve, was dying.
As Jesus was on his way, the crowds almost crushed him.43And a woman was there who had been subject to bleeding for twelve years,but no one could heal her. 44She came up behind him and touched the edge of his cloak, and immediately her bleeding stopped.
45 “Who touched me?”Jesus asked.
When they all denied it, Peter said, “Master, the people are crowding and pressing against you.”
46But Jesus said, “Someone touched me; I know that power has gone out from me.”
47Then the woman, seeing that she could not go unnoticed, came trembling and fell at his feet. In the presence of all the people, she told why she had touched him and how she had been instantly healed. 48Then he said to her, “Daughter, your faith has healed you. Go in peace.”
49While Jesus was still speaking, someone came from the house of Jairus, the synagogue leader. “Your daughter is dead,” he said. “Don’t bother the teacher anymore.”
50Hearing this, Jesus said to Jairus, “Don’t be afraid; just believe, and she will be healed.”
51When he arrived at the house of Jairus, he did not let anyone go in with him except Peter, John and James, and the child’s father and mother. 52Meanwhile, all the people were wailing and mourning for her. “Stop wailing,”Jesus said. “She is not dead but asleep.”

53They laughed at him, knowing that she was dead.54But he took her by the hand and said, “My child, get up!”55Her spirit returned, and at once she stood up. Then Jesus told them to give her something to eat. 56Her parents were astonished, but he ordered them not to tell anyone what had happened. (NIV)



40예수께서 돌아오시매 무리가 환영하니 이는 다 기다렸음이러라 41이에 회당장인 야이로라 하는 사람이 와서 예수의 발 아래 엎드려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니
42이는 자기에게 열 두살 먹은 외딸이 있어 죽어감이러라 예수께서 가실 때에 무리가 옹위하더라 43이에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던 여자가
44예수의 뒤로 와서 그 옷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 45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하시니 다 아니라 할 때에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무리가 옹위하여 미나이다 46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 하신대 47여자가 스스로 숨기지 못할 줄을 알고 떨며 나아와 엎드리어 그 손 댄 연고와 곧 나은 것을 모든 사람 앞에서 고하니 48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 49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말하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선생을 더 괴롭게 마소서 하거늘
50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시고 51집에 이르러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및 아이의 부모 외에는 함께 들어가기를 허하지 아니하시니라 52모든 사람이 아이를 위하여 울며 통곡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53저희가 그 죽은 것을 아는고로 비웃더라 54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불러 가라사대 아이야 일어나라 하시니 55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예수께서 먹을 것을 주라 명하신대 56그 부모가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경계하사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하시니라 (개역한글)


    

회당장인 야이로는 12살 난 그의 딸이 죽어가자 예수님을 찾아와 딸을 살려달라고 한다. 예수님은 그의 사정을 듣고는 그의 집으로 향하다말고 중간에 걸음을 멈추신다. 내 큰 아들 이안이가 2살 때 차에 갖힌 일이 있었다. 차에 아이를 앉혀놓고 문을 닫았는데 문고리가 '찰칵'하고 닫히는 거다. 아이를 시트에 앉히고 벨트를 채우느라 실랑이를 하는 과정에서 주머니에서 키가 떨어진 줄도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 그 키를 내가 무릎으로 눌러서 잠금버튼이 눌렸던 모양이었다. 아이는 문이 잠기고 아빠가 들어오지 않자 이내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보험회사에 전화를 걸어 긴급서비스를 요청했다. 마침 먼 곳에 있지는 않았는데 퇴근시간이라 차가 막혀서 오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고 했다. 서비스 차량이 도착하기까지 한 25분 정도 걸렸나. 내게는 그 시간이 25분이 아니라 25시간처럼 느껴졌다. 안에서 우는 아이의 목소리가 차 바깥까지 들리는데 그 음성이 내 뱃속을 헤집고 다녔다. 발이 저절로 동동 굴러졌다. 그의 생명에 아무 지장도 없는 것을 알면서도, 차가 막혀서 어쩔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늦게 오는 보험차량이 어찌나 야속하던지. 그때까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어찌나 무력하던지.


그런데 차 속에 갖힌 아이가 아니라 생명이 꺼져 가는 아이의 부모를 옆에 두고, 예수님은 중간에 발걸음을 멈추신다. 12년동안 혈루병을 앓고 있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가에 손을 대고 바로 치료를 받은 것이다. 그 여인은 예수님을 불러 세우지도 않았다. 아마 예수님이 일부러 걸음을 멈추시고 누군가 손을 댔는지 묻지 않았다면 아무도 이 이야기의 내막에 대해 모른 채 지나갔을 것이다. 당연히 누가가 이 이야기를 기록하지도 못했을 거다. 마지못해 두려움에 떨면서 나온 여인에게 예수님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47)하고 말씀하신다. 치유의 기적을 행하시고는 번번히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던 예수님의 행보와 너무나 상반된 태도 아닌가. 그것은 예수님이 혈루병을 치유받은 여인에게 하신 말씀이 곧 그곳에 있던 모두에게 하시고 싶었던 말씀이라는 점을 반증한다. 믿음(faith)에 대해 말씀하고 싶으셨던 거다. 예수님은 여인을 '딸'이라고 지칭함으로써 그가 아버지임을 나타내셨다. 그곳에 있는 모든이의 아버지임을 나타내셨다. 그리고 아버지를 믿으라고 하셨다.


아무튼 이렇게 시간이 지체되는 동안 죽어가던 야이로의 딸은 목숨을 거두고 만다. 야이로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딸의 죽음을 알린 것이다.(56)  그 부모의 실망감을 상상이나 하겠는가? 그것도 자신의 딸보다는 병세가 훨씬 덜 급해보이던 한 여인의 병을 고쳐주고, 또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이야기를 하느라 그 금쪽 같은 시간을 거리에 버리게 된 부모의 마음을? 야이로의 집에서 온 사람(아마도 하인이었을 것이다)의 말이 그 심정을 대변한다.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선생을 더 괴롭게 마소서 (개역한글)

 “Your daughter is dead,” he said. “Don’t bother the teacher anymore.” (NIV)


'괴롭게 하지 말라'는 한글 번역과 함께 영문에는 어떻게 기록되었는지 보라. 'bother'이라는 동사를 쓰고 있다. ESV나 KJV에는 'trouble'이라는 동사를 사용한다. 여기에는 '더이상 선생님을 귀찮게 하지 마소서'라는 뜻이 함유되어 있다. 딸이 죽었으니 더 이상 선생님을 귀찮게 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말이다. 그 행간에 있는 실망감이 느껴지는가? 


그러나 이렇게 한 번 생각해보자. 야이로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님이 병자의 근처까지 가지도 않고 병자를 치유하신 일에 대해 알고 있다. 요한복음 4장 46절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46Once more he visited Cana in Galilee, where he had turned the water into wine. And there was a certain royal official whose son lay sick at Capernaum. 47When this man heard that Jesus had arrived in Galilee from Judea, he went to him and begged him to come and heal his son, who was close to death.
48 “Unless you people see signs and wonders,”Jesus told him, “you will never believe.”
49The royal official said, “Sir, come down before my child dies.”
50 “Go,”Jesus replied, “your son will live.”
The man took Jesus at his word and departed. 51While he was still on the way, his servants met him with the news that his boy was living. 52When he inquired as to the time when his son got better, they said to him, “Yesterday, at one in the afternoon, the fever left him.”
53Then the father realized that this was the exact time at which Jesus had said to him, “Your son will live.”So he and his whole household believed.

54This was the second sign Jesus performed after coming from Judea to Galilee.  (NIV)














46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47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에 오심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주소서 하니 저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48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49 신하가 가로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50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 하신대 그 사람이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51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았다 하거늘 

52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제 칠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53 아비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았다 말씀하신 그 때인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이 다 믿으니라 54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 (개역한글)



예수님이 계신 가나로부터 병든 아들의 아비가 사는 가버나움까지는 약 20km의 거리가 있다. 예수님이 '네 아들이 살았다'고 말씀을 하시자 이 거리를 초월한 치유의 기적이 나타난다. 그렇다면 오늘 누가복음에 나오는 야이로에게는 왜 같은 방식으로 기적을 일으키지 않으셨던 것일까? 예수님은 가버나움에서 달려온 병든 아들의 아비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48)  예수님이 표적과 기사를 행하신 이유는 우리를 믿게 하기 위해서다. 우리가 표적과 기사를 믿는 것이 아니라, 그런 권능을 가진 하나님을, 그 하나님의 주권을 믿게 하시려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이적을 본 사람들한테 다른 이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이다. 공짜 치료와 공짜 음식, 공짜 포도주를 얻기 위해 예수님에게 오기보다는 '예수님를 만나러' 오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기적들은 마트에서 나눠주는 사은품도 아니고 미끼상품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많은 순간, 하나님을 믿기 보다는 그의 은혜와 기적을 원한다. 그리고 원하는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면 - 혹은 경험한 후에는 - '더 이상 선생님을 귀찮게 하지 않는다'. 아버지보다는 아버지의 유산을 원했었던 탕자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오늘 본문에서도 딸이 이미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망연자실한 야이로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시고 (50)'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어떤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 그 자체이다.


요 몇 달간 나는 하나님께 '하나님께서 나에게 삶의 다음 단계에 대해 길을 열어주시기를' 간구했다. '하나님이 나의 삶의 주인이 되시기를' 기도했다. 그러나 나는 그 기도를 하면서도 많은 순간 하나님을 아버지로 여기고 믿고 의지하기 보다는 '빨리 내 길을 열어주시기 위한 방법'으로 그러한 기도를 선택했었음을 고백한다. 그러한 기도로 하나님을 살살 달래려고, 사탕발림하려고 했던 의도가 섞여있었음을 고백한다. 이것은 기만에 지나지 않았다. 정말 내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아니었다. 그 기도로 인해 하루 빨리 내 미래가 눈 앞에 보여서 내 걱정이 사라지기 원하는 것이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이었다. 은혜만 바랄 뿐, 은혜의 출처(source)인 '아버지'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주님께서 예비하신 일이라면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 살아난 것처럼 내가 상상도 하지 못한 방법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 또 중간에 내 속이 뒤집어질 정도로 지체가 된다고 해도 그가 예비하신 타이밍에 이루어질 것이다. 내게 필요한 것은, 또 하나님이 가장 바라고 기다리고 계신 것은, 그를 진정 아버지로 인정하는 믿음이다. 탕자가 '엄친아'에서 돼지의 사료나 훔쳐먹던 비참한 빈털털이로 전락한 후에야 비로소 그 중요한 회귀를 경험한 것처럼, 나도 내 방향에 대해 다시 한번 점검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회하고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은 결코 귀찮아 하시지 않을 것이다. He will never be bothe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