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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질을 깬다는 것...

Melphi 2009. 9. 8. 00:45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018&article_id=0002153017


올해 갑자기 각성해서 리그 타격왕을 넘보고 있는 LG 트윈스 박용택 선수.
이 기사에서 말하는, 팬들이 갖고 있는 편견들을 나도 예외없이 갖고 있었다.

박용택. 79년생. 휘문고-고려대 졸. 2002년 데뷔.
이병규의 후계자로 화려하게 주목받은 프랜차이즈 스타 만년 0순위 후보.
잘생긴 외모로 서울지하철 광고에 (이윤지와 함께) 등장해 '메트로 박'이라는 별명까지 붙은 선수.

그러나...

재능은 갖고 있지만 노력이 부족해서 잠재력을 모두 끌어내지 못하는 선수.
준수한 성적을 거두지만 일류 급으로 성장은 못하는... 언제나 B+인 선수.
최악의 성적을 거두었던 작년에는 C+급 선수로 강등당했고,
그나마 '젊음'이 지탱하던 재능마저
일찍 찾아온 '노쇠화'와 함께 결국 만개하지 못하고 시들어버리는 것만 같았다.

이제 대다수의 LG팬들은 그에게서 더 이상의 미련을 거둔 채,
올림픽과 WBC의 스타인 FA 이적생 이진영으로 채워진 외야에서
그가 선발로 뛸 자리는 없을 꺼라고 판단했고,
그저 적당한 트레이드 카드로나 언급되곤 했다.
타팀 팬들은 내리막에 들어선 그저그런 선수를 누구랑 맞바꿀꺼냐고 응수했음은 물론이다.

나와 비슷한 세대에 속한 선수이자,
재능과 매력을 갖고 있지만
지나치게 개인적이고 '야구하는 태도가 글러먹은' 전형적인 LG 선수.
어떤 면에서는 나 자신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들었던 선수였다.



실력이라는게 참 묘하다.
노력에 비례하는 것 같으면서도 막상 본인은 그걸 계속 의심하게 된다.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성과가 꾸준히 나타나주어야만 안심이 되며,
그렇지 않을 때는 내가 노력하는 방법이 맞는지,
내 재능이 원래 이 정도인 건지,
이 길이 내게 맞는 건지 회의가 들기 시작한다.
더 이상 노력해도 실력이 늘지 않는다고 느끼기 시작할 때는
이미 의욕을 상실하고 있고,
인내력이 고갈되면서 노력이 줄고,
고로 실력은 정체하게 되어있다.
거기서 조금 더 노력을 기울이면
벽을 부수고 다음 단계로 진입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많은 경우, 실력을 향상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과의 끊임없는 싸움이며,
강인한 참을성을 필요로 하는 일이고,
끝도 보이지 않고 기약도 없기 때문에
꾸준한 자제력을 요구하는 길이다.



다름아닌 박용택 선수에게 이런 면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건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는 프로팀의 지명을 못받는 아픔을 겪고나서 이 악물고 노력한 신고선수 출신의 김현수와는
정반대의 기질과 경력을 가진 선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로라하는 타격 코치들의 전수를 받아서 새 타격폼을 들고 나와도
박용택 선수의 노력이 부족해서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올해, 드디어 좌충우돌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도
노력을 중단하지 않은 그에게 결국 때가 왔다.
타격에 새로운 눈을 뜬 그는 이미 예전의 존재와는 다른 선수가 됐다.
물론 박용택 선수에게도 슬럼프가 오고 타율을 까먹는 시기가 올 수 있다.
내년에 올해만큼의 스탯이 안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전의 박용택으로 돌아가지는 않을꺼다.

그건 일단 한번 성장한 선수가 - 노쇠가 아닌 한 - 퇴보하는 일은 없기 때문이며,
(심리학에서는 이걸 학습<learning> 이라고 하더군요.)
요행이 아닌 노력으로 이룬 결과라면,
지금의 타격 매커니즘을 체화했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 점은 올시즌에 급격한 상승세나 하락세가 없이 꾸준한 활약을 보여줬다는 점으로 증명할 수 있다.
부상이나 몸의 밸런스가 깨질만한 사건이 생기지 않는다면,
박용택 선수는 올시즌이 '반짝 1년'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성적을 앞으로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주어진 환경을 탓하고,
주위에 한둘씩은 꼭 있는 엄친아만 부러워하고,
종종 자제력을 상실하며,
부족한 노력 탓은 생각안하고
자신의 한계만 점점 낮게 그어나가는
나에게
새로운 경종을 울려준다.


기억해두겠다. 박용택 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