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칼럼 Columns

영화 <청연>에 대한 친일 논쟁을 보며.

Melphi 2006. 1. 5. 10:07
[영화를 관람할 예정인 분들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다행히도 스토리 요약은 없습니다.]

2005년 끝머리에 즈음하여 '청연'을 봤다. 일단 기본적으로 배우 장진영이 좋아 내린 선택. 영화를 보고 나온 순간 머리에 처음으로 든 생각은 '이 영화 때문에 꽤 시끄러워지겠군'이었다.

역시나.

개봉한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이 영화에 대한 논란으로 인터넷이 난리다. 이 영화가 친일영화라는 주장의 주된 이유는 1) 일본에 대한 적대감을 지나치게 자제하였다는 것과 2) 주인공 박경원이 장거리 비행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일본이 제안한 '일장기 부착'을 굴욕적으로 수용하였다는 점이다.

일제 치하의 조선인을 다룬 영화는 어쩔 수 없이 반일적인 색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그것은 36년간 치욕의 역사를 경험한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한 가지 측면에서 약간 입장이 다르다. 조선 최초의 민간인 여류 비행사 박경원을 다룬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본을 배경으로 펼쳐진다는 점이다. 제국주의의 추악하고 비열한 행태가 가장 직접적이고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은 본국이 아닌 식민지다. 영국이 인도인들을 거침 없이 학살한 곳은 영국이 아닌 인도였듯이, 일본의 경우도 본토보다는 조선이고, 만주였던 것이다. 힘 없는 다수가 총칼 든 소수에게 무력하게 제압당하고 피 흘리고 신음하는 것은 조선을 배경으로 했다면 당연히 나왔을 법한 장면이다. (물론 이 영화에서도 일본 군부에게 고문받는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단지 본국에서는 식민지와 비교할 때 이런 장면이 표면적이고 일상적이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 전반부의 분위기는 매우 평온한 편이다.)

하지만 일본 본토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조금 다를 수밖에 없다. 힘 있는 다수와 힘 없는 소수의 집단 구성을 갖고 있으며, 피통치자가 모두 조선인이지도 않다.(일본인이 더 많다.) 이런 상황이라면 힘 없는 소수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조용히 '찌그러져' 살든가 아니면 독립투사처럼 흉악무도한 제국의 심장에서 장렬히 산화하든가. 대부분은 첫 번째를 선택한다. 주인공들도 그러했다. 적극적으로 일본에 협조하거나 같은 조선인을 팔아먹거나 하지는 않는다. 이들은 평범한 조선인들일 뿐이다.

일장기? 1936년에 고 손기정 옹이 일장기를 달고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했을 때 조선 팔도가 뜨겁게 울었다. 그 시절은 그런 시절이었다. 조선인이지만 조선인일 수 없었던, 일본인의 탈을 쓰지 않고서는 영광도 없던, 아니 그 최소한의 기회마저 부여받지 못하던 시절이었던 거다. 박경원이 일장기 때문에 욕을 먹어야 한다면 일제 시절의 소학교를 다니면서 일장기에 목례를 올리고 일본 국가를 불렀으며 이름 마저 일본식으로 바꿨던 이 땅의 백성들이 마찬가지로 욕을 먹어야 한다. 이건 말이 되지 않는다.

나는 독립투사들을 존경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못했던 어려운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나의 증조부께서도 독립투사셨다. 안타깝게도 3대까지만 주어지는 국가유공자의 혜택 때문에 나는 그 수혜자가 되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독립투사가 아니었던 대다수의 한국 동포들에게 그 분이 실망감과 배신감을 느끼셨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 시절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하루도 한 달도 아닌, 36년이었기에. 등의 창에서 진물이 나고 눈가에 눈물 지워질 날 없지만 그래도 치욕스럽게 하루 하루를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그 나날들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까.

실제 박경원이 친일파였는지 어땠는지는 나도 알 바 없다. 영화에서만 보았을 때 부정적으로 보아야 하는 인물은 친일파였던 김주혁의 아버지 정도인 것 같다. 하지만 아마 친일 영화 논란에 휩싸일 것이 뻔히 보였기에, 극장을 나서면서 마음이 내내 편치는 못했다. 이 영화는 박경원을 영웅으로 만드려는 의도가 전혀 없는 영화다. 그저 하늘을 날고 싶은 꿈이 있었던 한 조선인의 비애를 그렸다고 보는게 맞는 것 같다. 정말 일제 시대는 이 땅에 너무나 많은 상처를 남겼다. 요즘의 논란은 아직도 그 상흔이 너무 깊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들게 한다.